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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끼가 사라졌다!”

by 이한수|

“뽕끼가 사라졌다!” main image뽕을 찾아서 1화

현재의 우리는 인류 탄생 이래 가장 빠른 기술적·문화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어느덧 우리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이전의 일상을 떠올리기 어려워졌고, 한때 모두가 향유하던 플랫폼이 순식간에 뒷방으로 밀려나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코로나19의 창궐은 사회와 문화의 어법을 뒤흔들었으며, 최근 몇 년 급격히 성장한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창작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수 세기, 수십 년을 주기로 변화하던 사회는 이제 수 년, 수 개월마다 급변하여 우리에게 그 소용돌이에 적응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원심분리기처럼 우리를 뒤흔드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또 어떻게 버텨야 할 것인가.

우리의 대중음악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음악을 만드는 방식, 유통하는 방식, 소비하는 방식은 지난 수십 년간 거듭된 변화를 겪었고, 새로운 기술과 문화는 그때마다 대중음악을 둘러싼 환경 자체를 새롭게 구성했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약 25년, 세기의 1/4이 지난 지금이 현 세기의 궤적을 돌아보기 적절한 시점이라 판단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이처럼 과거의 전철을 기록하는 일은, 앞으로의 변화를 가늠하기 위한 하나의 이정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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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첫 사반세기를 모두 통과해 온 내게 2000년 무렵과 2026년의 음악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를 느끼는 부분은 ‘뽕끼’다. 발라드의 애절한 목소리에서도, 댄스곡의 전자음에서도 들리던 그 익숙한 감각이 지금은 꽤나 희미해졌다.

뽕은 여전히 살아 있다. 트로트는 2020년 <미스터트롯> 결승전 시청률 35.7%를 기록하며 방송의 중심으로 돌아왔다.[1] 이박사도 2025년 머쉬베놈과의 협업곡 ‘돌림판’을 통해 자신의 뽕짝이 건재한 컬트 클래식임을 보여줬다.[2] 그 정서를 새롭게 해석했던 250의 <뽕>은 2023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을 수상하기도 했다.[3]

뽕은 좁게는 뽕짝을, 넓게는 트로트와 그 안에 담긴 정서까지 가리킨다. 그만큼 뽕끼를 설명하는 요소도 꺾기 창법과 애절한 선율, 통속적인 노랫말부터 강한 2박 리듬과 흥겨운 몸짓까지 다양하다.[4][5][6] 그리고 그 기운은 트로트나 뽕짝이라는 이름표가 달려 있지 않은 노래에도 스며 있었다.

“뽕끼가 사라졌다!” image2Wonder Girls(원더걸스) "Tell me" M/V

케이팝도 예외가 아니었다. 원더걸스의 ‘Tell Me’는 복고에 뽕끼를 결합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를 두고 한국대중음악상은 반복선율을 뽕끼로 변주한 작법을 높이 평가하고, 여러 시대의 음악을 결합한 구성이 세대를 아우른 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7] 이렇듯 뽕끼는 과거를 재현하는 색채이자 다양한 청중에게 다가가는 음악적 전략이었다. 슈퍼주니어-T의 ‘로꾸거’와 대성의 ‘날 봐, 귀순’처럼 아예 직접 트로트를 부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콘셉트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에서는 전자음과 박자로, 2AM의 ‘죽어도 못 보내’에서는 호소하는 목소리로 그 기운이 먼저 들린다. 노래방에선 그런 리듬을 타고 창법을 흉내 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혼자 들을 땐 조금 과한 정도의 감정 표현이 직접 따라 하는 재미를 이끌어냈다. 뽕끼는 함께 부르고 노는 문법을 공유하게 했다.

이런 음악이 성공하던 무렵 뽕끼에서 벗어난 음악도 주목받았다. 음악평론가 차우진은 2009년 “‘가요’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은 ‘뽕끼’의 유무였다”고 썼다. 이전에도 뽕끼를 덜어내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주류에서는 쿨과 코요태처럼 오히려 그 기운을 강화한 음악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가 투애니원의 ‘파이어’와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등에서 포착한 변화는 뽕끼에서 벗어나려는 음악도 주류 히트곡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었다.[8]

“뽕끼가 사라졌다!” image3Red Velvet 레드벨벳 'Dumb Dumb' MV

라이언 전은 이를 제작 현장에서 경험했다. 미국의 음악적 트렌드를 한국 대중가요에 접목하려던 그는 “너무 앞서나간다”, “뽕끼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해외로 나아가려면 그런 결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자기 방식을 고수했고 SM이 그 음악을 알아봐 주었다고 회고했다.[9] 뽕끼의 부재를 부족함으로 보는 기준과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는 기준이 맞선 셈이다.

속칭 ‘히트곡 제조기’이자 뽕끼로 성공한 신사동호랭이도 새 팀에서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2021년 걸그룹 트라이비를 준비하며 어린 멤버들에게 뽕끼 있는 멜로디의 이미지를 붙이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팬들이 오래된 것에 냉정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기존 작법의 영향을 피하려 관련 의뢰를 자제했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 가이드 데모를 받아 보기도 했다.[10] 해외 팝을 참조한다고 뽕끼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케이팝이 영미권 팝과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가요와 케이팝의 필수요소에 가까웠던 뽕끼가 선택적인 작법이 됐다는 건 확실하다.

아이브의 ‘After LIKE’나 예나의 ‘캐치 캐치’에서는 그 어법이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캐치 캐치’는 티아라나 오렌지캬라멜 등의 2세대 아이돌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와 사운드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렇게 다시 돌아온 뽕끼에선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부르고 싶은 후렴이 나와도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먼저 의식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뽕끼가 사라졌다!” image4YENA (최예나) - 캐치 캐치 (Catch Catch) MV

뉴진스의 ‘ETA’는 파벨라 펑크(funk) 장르와 브라스까지 대동한, 250의 발언처럼 ‘슬퍼도 춤을 춰야 하는’ 음악이다.[5] 이 노래를 대학축제와 팬미팅 무대에서 불렀을 때를 비교하면, 내게는 대학축제 쪽의 호응이 더 자유롭게 느껴졌다. 거기선 다들 후렴을 할 수 있는만큼 따라불렀다. 반면 팬미팅 무대에서는 앞서 자유롭게 즐겨 달라는 멤버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노래를 따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응원법을 해야 할지 의식하게 됐다. 결국 응원법을 하다 가사를 따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응원법이 뽕끼를 가로막은 셈이다.

음악인류학자 토마스 투리노는 실시간 음악 수행을 참여형과 발표형으로 구분했다. 발표형에서는 공연자가 관객을 위해 음악을 준비하지만, 참여형에서는 공연자와 관객을 나누기보다 서로 다른 역할로 함께한다. 특히 참여형에서는 음악의 완성도만큼이나 사람들이 얼마나 참여하고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중요하다. 서툰 사람을 배제하기보다 그도 함께할 수 있도록 돕는 태도를 우선하는 것이다.[11] 잘 보여주는 것과 잘 어울리는 것은 다르다. 관객의 반응을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하는 데 집중하면서, 그 자리에 서툴게 끼어들 여지까지 줄이고 있는 건 아닐까?

응원법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1세대 아이돌 시절부터 팬들이 응원 구호를 만들어 사용했고, 이후 회사 차원에서 공식 가이드를 제공하는 형태로 변화했다.[12] 규칙의 유무보다 그 규칙을 정하고 바꿀 수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라이즈의 ‘Fame’ 공식 응원 안내는 표시된 부분만 외치고 “정해지지 않은 응원 문구는 삼가” 달라고 명시하고 있다.[13] 참여 방법을 알려주는 데서 나아가 관객이 표현해도 되는 범위까지 지정하는 것이다.

“뽕끼가 사라졌다!” image5RIIZE Weverse 공지글 일부

이렇게 객석 반응까지 기획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일은 아이돌 공연을 넘어 대중음악의 다른 무대에서도 확인된다. 로이킴은 2024년 콘서트를 앞두고 ‘봄봄봄’, ‘문득’, ‘WE GO HIGH’의 응원법을 공식적으로 안내했고, 같은 해 윤하의 공연에는 응원봉 중앙제어가 사용됐다.[14][15] 트로트 팬도 예외는 아니다. 2026년 임영웅의 고척돔 공연에는 곡별 좌석 매핑 연출이 적용됐다.[16] 중앙제어가 이루어지는 동안 관객이 손에 든 빛의 색깔도 제작진의 연출을 따른다. 트로트와 뽕끼가 돌아왔지만, 관객의 참여는 예전만치 자유롭지 못하다.

응원법은 처음 온 사람에게 참여 방법을 알려주고, 중앙제어는 혼자 만들 수 없는 장관을 만든다. 모두의 안전을 지키고 다른 관객의 시야와 청취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타인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과 정해진 방식으로만 반응하라는 것은 다르다. 응원봉 대신 박수를 치고, 지정된 구호 대신 함께 부를 만한 후렴에 목소리를 보태는 것까지 잘못된 참여로 여겨져야 할까.

‘캐치 캐치’에서도 익숙한 가락과 몸짓은 흉내 내며 놀 구실이 된다. 그러나 친구들 앞에서 따라 추는 것과 그것을 촬영해 공개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미 능숙하게 춤추고 챌린지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나도 함께 놀겠다는 생각보다 나는 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챌린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챌린지를 중심으로 참여가 제시될 때, 따라 하기 쉬운 음악을 빌려 노는 일에도 남에게 보여줄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붙는다.

“뽕끼가 사라졌다!” image6아일릿이 출연할 일이 없어서 장병들이 직접 커버한 Magnetic~^^ (원곡: 아일릿) / KFN 위문열차-공군 제17전투비행단

‘Tell Me’의 노래와 안무도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사를 제주도 사투리로 바꾸고, 춤을 에어로빅이나 살사, 발레로 변형했다.[17] 노래를 따라 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자유롭고 즐겁게 변형했다.

다른 가락과 몸짓을 보태도, 조금 틀리고 엉성해도 함께 즐길 수 있는가. 애절한 창법을 과장해서 흉내 내고, 아는 후렴에 끼어들고, 춤을 몰라도 박자에 몸을 맡기는 일. 내가 뽕끼가 사라져가는 과정에서 아쉬워하는 것도 이런 재미가 함께 멀어지는 감각이다. 설령 뽕끼가 돌아오더라도, 그 노래를 갖고 노는 게 어색해진다면 함께 즐기기 위한 문법으로서의 뽕끼는 설 자리를 잃는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무대를 꾸미는 사람, 그 앞에서 듣고 움직이는 사람이 함께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잘 맞아떨어지는 장면만큼 뜻밖의 반응도 즐기고, 누군가 서툴게 끼어들면 서로 맞춰가며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니 익숙한 음악을 함께할 구실로 삼았다면, 노는 방법은 묻지 말자. 그러면 분명 집 나간 뽕끼도 오랜만에 얼굴을 내비치러 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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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자료

[1] 신동흔, “미스터트롯 오늘밤 특별 생방송… 결승전 시청률 35.7% 신기록”, 조선일보, 2020.
[2] 안태현, “이박사 손잡은 머쉬베놈, 신곡 ‘돌림판’으로 흥행 돌풍 시작”, 뉴스1, 2025.
[3]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 “2023 (20회) 올해의 음반, 250 [뽕]”, 한국대중음악상, 2024.
[4] 손민정, “트로트의 정치학”, 음악세계, 2009, pp. 31-32, 140-144.
[5] 김도헌, “250, 한국의 ‘뽕’을 찾다”, 위버스 매거진, 2022.
[6] 고바야시 다카유키, “일본 ‘엔카’와 한국 ‘트로트’ 비교를 위한 기초적 관점”, 아시아 문화 연구, 2018, pp. 16-26.
[7] 김고금평, “2008 (5회)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노래, 원더걸스 ‘Tell Me’”, 한국대중음악상, 2009.
[8] 차우진, “가요답지 않은 가요”, PD저널, 2009.
[9] 이정호, “라이언전 "앨범판매량 1천만장..K팝 만드는데 일조"(인터뷰②)[스타메이커]”, 스타뉴스, 2018.
[10] 이정수, “[인터뷰] 영혼 갈아넣은 트라이비 데뷔… 신사동호랭이 “완성도 대만족””, 서울신문, 2021.
[11] T. Turino, “Music as Social Life: The Politics of Participa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8, pp. 26, 28–29, 33–35.
[12] 나지연, 김수지, “[익룡전쟁] "스타카토 함성 아시나요?"…달라진 오빠 응원법”, 디스패치, 2012.
[13] “[공지] RIIZE 'Fame' 응원법 안내!”, 위버스, 2025.
[14] “2024 로이킴 콘서트 <R♥y actually> 응원법 안내”, X, 2024.
[15] “2024 윤하 연말 콘서트 GROWTH THEORY 응원봉 중앙 제어 모드 관련 안내”, X, 2024.
[16] 이정범, “임영웅, 2026 전국투어 서울 공연 성료…5만 4천 명 동원”, 엑스포츠뉴스, 2026.
[17] 조상인, “전국은 지금 텔미춤과 열애중…어머나♬ 다시 한번 말해봐♪”, 스포츠경향, 2007.